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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농어업회의소법 통과,농민은 농정의 주인이 되는가

- 16년 시범사업 끝 법제화…대표성·재정독립·정책반영이 성패 가른다 -

 지난 8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농어업회의소법안」이 통과됐다.  2010년 강원 평창, 전북 진안, 전남 나주에서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이 시작된 지 16년 만이다.  농어업인이 농정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 형성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안은 정치적 중립 의무와 함께 농어업회의소의 정착을 위한 컨설팅·교육·홍보 지원 근거도 담고 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농어업인이 ‘농정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농어업회의소의 기본적인 역할은 지역 농어업인의 의견을 모아 정책에 참여하고 지방정부에 자문 · 건의하는 것이다. 지자체의 정책을 결정하거나 거부할 권한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결국 회의소가 얼마나 폭넓게 농어업인의 의견을 모으고, 행정이 그 의견을 실제 예산과 사업에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농업환경뉴스는 이번 본회에서 통과된 농업회의소 법에 대한  중요한 의미와 문제점, 그리고 향후 해결해야할 과제 등을 집중 조명한다.

 

정말 농어업인이 지방농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가?

 

기초농어업회의소는 시·군·구 등을 단위로 만들 수 있고, 농림어업인 30명 이상이 발기한 뒤 농림어업인 1천 명 이상 또는 전체 농림어업인의 1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일반 농어업인은 일반회원이 될 수 있고 농·수·산림조합, 농어업법인 등도 단체회원으로 참여한다.

 

특히 총회를 두어 회원들이 회장 · 대의원 선거, 정관 변경, 지자체 위탁업무 수탁 여부 등에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단체 출신 대의원은 전체 대의원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띕다.

 

또 법은 회의소가 농어업정책 과정 참여, 정책 자문·건의, 정보·자료 수집·제공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분야·세대·성별·품목별 의견이 고르게 반영되도록 하는 원칙을 법에 넣었다는 점이다. 광역회의소 대의원 구성에도 청년·여성 대의원이 포함된다.

 

따라서 예전처럼 군청이나 농정 담당 공무원이 필요할 때 몇몇 농민단체 대표를 불러 의견을 듣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설화된 농어업인 대표기구와 지방정부가 협의하는 구조를 법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농식품부 역시 이를 농어업 현장과 지방농정을 연결하는 자율적 대의기구의 법제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법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농정의 대상에서 농정의 주체로’의 전환 가능성이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농업정책은 대체로 정부·지자체에서 농업인이라는 구조였다. 정부가 사업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면 농업인은 신청하거나 지원받는 사람이었다. 농어업회의소가 제대로 작동하면 구조가 농어업인 → 의견수렴 → 농어업회의소 → 지자체와 협의 → 정책·예산 → 평가 → 다시 농어업인으로 변경된다.

 

사실,  이런 가능성은 시범사업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초기 사례에서는 평창군이 읍·면 순회간담회→분과위원회→농정협의회→농정심의회로 현장 의견을 정책과 예산에 연결했고, 나주시에서도 지역 농어업인의 의견이 중장기 발전계획에 반영된 사례가 보고됐다. 연구는 회의소가 행정의 ‘농정 카운터파트’ 역할을 하고 농어업인 단체 간 소통을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법 제정 자체는 상당히 의미 있는 제도적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2024년 국회를 통과했다가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된 법과 이번 법이 똑같지 않다는 점이다.  2024년 법안에는 전국농어업회의소까지 3단계 구조가 있었지만, 이번 최종안에는 전국농어업회의소가 빠지고 기초 · 광역 중심으로 설계됐다.  2024년 당시 정부가 제기했던 ‘거대한 조직화·기존 단체와 기능 중복·관변화’ 우려를 일정 부분 반영한 절충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실제로 농협·수협 등과 기능이 중복되고 관변화될 가능성을 재의요구 사유로 들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표성’이다

 

법적 명칭이 대의기구라고 해서 자동으로 그 지역 농어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회의소 설립 요건은 농어업인 10% 또는 1천 명의 동의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상당수 농어업인이 회원이 아니더라도 회의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핵심 문제는 대표성 문제이다. 실제 회원가입률이 낮거나 몇몇 품목·단체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농어업인 전체의 대의기구’라는 정당성이 약해진다. 특히 고령 남성 중심 기존 조직에 청년농·여성농·소농·귀농인·임차농 등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관변화 문제도 우려된다. 지방정부의 재정과 행정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회의소가 군수·시장이나 담당 공무원의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자율기구가 오히려 ‘또 하나의 관변단체’가 되는 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이다. 과거에도 이런 우려가 법제화 논쟁의 핵심이었다.

 

기존 조직과의 중복문제이다. 농협·수협·산림조합, 농민회, 품목별 단체, 농정심의회,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등이 이미 존재한다. 농어업회의소가 이들을 대체할 것인지, 조정할 것인지, 의견을 종합하는 상위 플랫폼이 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회의만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다. 초기 연구에서도 기존 농민단체·각종 위원회와의 관계 설정이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자문은 하지만 결정권은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법은 회의소가 정책 과정에 참여하고 ‘자문·건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소가 반대한 사업을 지자체가 반드시 중단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회의소의 제안을 반드시 예산에 반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지자체가 형식적으로 의견만 듣고 기존 정책을 그대로 추진한다면 회의소는 ‘공청회 상설기구’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전문성의 문제도 우려된다. 농정은 농지·환경·유통·기후변화·축산·수산·예산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이다. 사무국과 전문인력이 부족하면 결국 자료를 가진 행정기관에 의존하게 된다. 정부도 이번 법에서 컨설팅·교육·홍보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간 격차도 커질수 있다. 조직력이 좋은 지역은 강력한 회의소를 만들지만 농업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지역은 사실상 명목상 회의소에 그칠 수 있다.  그러면 오히려 지역 간 농정 참여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전국 단위 목소리의 공백이다. 이번 법에서 전국농어업회의소가 빠진 것은 거대 관변조직화를 막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 문제도 있다.  쌀값, FTA, 농업예산, 농산물 수입,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시·군이나 도 단위로 해결할 수 없다. 기초·광역회의소의 의견을 어떻게 전국 정책으로 모을 것인지 별도의 연결 구조가 필요해진다.

 

농어업회의소 성공여부는 무엇인가

 

농어업회의소의 성공 여부는 ‘법인격’보다 지자체가 회의소 의견에 어떻게 답하도록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농어업회의소가 “내년도 친환경농업 예산을 20% 확대해 달라.” 고 건의했는데 군청이 아무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큰 힘이 없게 된다.

 

반대로 지자체가 일정 규모 이상의 농업정책이나 농업예산을 결정할 때 회의소에 사전 의견을 요청하고, 회의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서면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즉, 앞으로 시행령·조례를 만들 때 ‘의견 제출권’보다 ‘행정의 답변 의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회비 등 자체 재원을 일정 수준 확보하고, 지자체 보조금·위탁사업 비중과 회계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돈을 주는 지자체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느냐”는 모순을 줄일 수 있다.

 

어떻든 농어업회의소법은 분명 의미 있는 법이다.  2010년 시범사업 이후 16년 동안 법적 근거가 부족했던 농어업인의 농정 참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고, 행정 중심 농정을 민관 협치형 농정으로 바꿀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법안 자체도 정부 주도 · 하향식 정책의 한계를 제정 이유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 농어업인의 대의기구를 만들었다 ”와 “ 농어업인을 실제로 대표한다 ”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 법의 성패를 앞으로 ① 실제 회원가입률, ② 청년 · 여성 · 소농의 대표성, ③ 지자체 보조금 의존도, ④ 회의소 제안의 정책·예산 반영률, ⑤ 지자체의 답변·공개 의무, ⑥ 기존 농민단체와 역할 분담이라는 여섯 가지 지표로 평가한다.

 

관계전문가들은 “ 농어업회의소법은 농어민에게 정책 결정권을 준 법이라기보다는, 농어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지속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법적 문’을 만든 법이다.” 며 “이제 관건은 그 문을 누가 들어가고, 들어간 사람의 목소리를 행정이 얼마나 실제 정책에 반영하느냐가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농업환경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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