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친환경농산물의 안정적인 소비 기반을 넓히기 위한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이 다시 출발했다. 정부가 올해 전국 임산부 16만 명을 대상으로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친환경농업계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사업의 성공 여부를 단순히 지원대상과 공급물량 확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산부가 믿고 구매할 수 있는 품질과 신선도, 정부 지원에 걸맞은 가격의 투명성, 그리고 소비 확대가 실제 친환경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8월 5일 경기도 광주시 ‘경기 유기농문화 체험센터’를 찾아 임산부들과 이유식 만들기 체험을 함께하고 친환경농산물 소비 확대를 위한 현장 의견을 들었다. 송 장관은 꾸러미 참여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공급품목을 확대하고 품질·위생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공급업체 준수사항을 위반한 업체에는 엄격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8만 명에서 16만 명으로…다시 시작된 친환경 꾸러미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이 새로 도입하기 전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임산부에게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해 출산·양육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친환경농산물의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에 첫 출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 국민 참여예산제도" 에 접수된 제안사업 중 " 임산부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 이 공감도 순위에서 상위권에 포진하기도 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임산부에게 공공수요 확대 차원에서 친환경유기농산물을 지원하자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렸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이 었던 최낙현 충북 단양 부군수는 " 미래세대를 태아 및 신상아부터 성장기를 거쳐 2세를 임신 출산하기까지의 연령대로, 유해물질 노출에 특히 민감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 미래세대의 건강과 출산율 제고를 위해 친환경농산물 공곱확대는 많은 의미가 있으며, 꼭 국가가 이를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시범사업으로 추진되면서 매년 약 8만 명의 임산부가 지원을 받았지만 이후 국비사업이 중단됐다. 하지만 올해 정부 국정과제로 다시 추진돼 2026년도 관련 예산으로 약 158억 원이 반영됐다.
올해는 지원 규모도 크게 늘었다. 전국 임산부 16만 명이 대상이다. 선정된 임산부는 자부담 4만8천 원을 포함해 총 24만 원 상당의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주문금액의 80%는 정부가 지원하고 20%는 이용자가 부담한다.
공급 대상은 유기농산물과 무농약농산물을 비롯해 유기가공식품, 유기축산물, 유기수산물 등 정부 인증을 받은 농식품이다. 특히 필수 공급품목을 과거 시범사업 당시 35개에서 올해 55개로 20개 늘렸다.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 과거 사업에서 제기된 불편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사업 확대는 친환경농업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학교급식 등에 집중됐던 친환경농산물 소비처를 가정으로 확대하고,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친환경농산물을 처음 접한 소비자가 이후에도 구매를 이어간다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만 명이라는 숫자가 곧 사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과제는 ‘품질과 신선도’…한 번의 실망이 신뢰 무너뜨릴 수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품질이다.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가 먹는 농산물은 일반 소비자보다 안전성과 신선도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다. 상하거나 시든 채소, 무른 과일 등이 배송되는 사례가 반복되면 특정 공급업체에 대한 불만을 넘어 친환경농산물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는 과거 사업에서도 나타나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0·2021년 시범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전반적인 사업 만족도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품질과 신선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일수록 실제 공급받은 친환경농산물의 품질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지속적인 품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가 공급업체의 위반행위에 엄격히 대응하는 것과 함께 보다 체계적인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출고 전 품질검사와 냉장·저온유통 관리, 배송 과정의 온도관리, 소비자 불만에 대한 신속한 교환·환불 기준 등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공급업체별 반품률과 민원 발생률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단순히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인가’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받는 순간까지 신선한가를 사업 품질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품목 수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살 수 있는가’
정부가 필수 공급품목을 35개에서 55개로 늘린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제도상 품목이 많다고 해서 소비자의 선택권이 자동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몰에 55개 품목이 등록돼 있더라도 소비자가 주문할 때마다 ‘품절’ 표시가 나거나 일부 품목만 반복적으로 공급된다면 체감 선택권은 낮아진다.
특히 친환경농산물은 일반 농산물보다 생산 농가와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이상기후에 따른 생산량 변동에도 상대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 최근 정부 역시 기후변화와 이상기상으로 농산물 생산·공급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공급 가능 품목 수’뿐만 아니라 상시 구매 가능 품목 비율과 품절률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제철 친환경농산물을 중심으로 공급체계를 다양화하고 특정 품목이 부족할 경우 소비자에게 사전에 알린 뒤 적절한 대체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정부가 80% 지원하는 만큼 ‘가격 신뢰’도 중요
가격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임산부는 구매가격의 20%만 부담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시장보다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격 적정성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친환경농산물은 생산비와 인증비용, 물류비 등이 일반 농산물보다 높을 수 있어 단순 가격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같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상품이 일반 온라인몰이나 전문매장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공급된다면 정부 지원사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공급업체 선정 이후에도 주요 농산물의 판매가격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유사한 친환경농산물의 시장가격과 비교해 과도한 가격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히 보조금이 불필요한 유통마진이나 과도한 포장·물류비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공급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유통비용을 낮추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사업에서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이는 방향의 유통 개선이 필요하다.
소비 늘어도 농가소득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반쪽 성공’
더 근본적인 과제는 이 사업이 실제 친환경농가에 어떤 도움을 주느냐는 것이다. 임산부 꾸러미 사업에는 두 개의 정책 목적이 있다. 하나는 임산부의 건강한 먹거리와 출산·양육을 지원하는 ‘먹거리 복지’이고, 다른 하나는 친환경농산물의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친환경농업 육성’이다.
농식품부도 이를 사업의 주요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16만 명에게 꾸러미를 공급했다는 실적만으로 성과를 평가해서는 부족하다.
정부 지원으로 늘어난 매출 가운데 실제 생산농가에 얼마나 돌아갔는지, 몇 개 친환경농가가 새로운 판로를 확보했는지, 농가의 계약재배와 생산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가능하다면 지역별 꾸러미 공급에서 해당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일정 비율 이상 우선 조달하고 생산자단체와 장기 계약재배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꾸러미 사업이 매년 사업자를 선정해 농산물을 구매하는 단기 사업에 그치지 않고 친환경농가가 다음 해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공시장이 돼야 한다.
지역 따라 달라지는 사업은 안 돼…전국 공통 서비스 기준 필요
지역 간 편차도 해결해야 한다. 농식품부도 사업 재개를 준비하면서 전국 17개 시·도의 지방비 확보와 사업 준비상황을 점검해왔다. 실제 사업 신청과 공급 일정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에 참여하는 구조에서는 어느 정도 차이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거주지역에 따라 신청기회나 공급품목, 배송서비스, 교환·환불 기준 등이 크게 달라진다면 국가사업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가 신청방법, 최소 공급품목, 배송기준, 품질보상, 민원처리 기간 등에 대해 ‘전국 공통 최소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공급업체 평가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
공급업체 역시 단순히 사업 참여 여부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 만족도, 품절률, 배송사고율, 반품률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반복적으로 기준을 위반하는 업체는 다음 사업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
친환경 꾸러미인데 ‘과대포장’한다면 정책 취지와 맞지 않아
농업·환경적 관점에서는 배송 포장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면서 스티로폼 상자와 비닐, 아이스팩 등 일회용 포장폐기물이 과도하게 발생한다면 정책의 환경적 가치가 반감될 수 있다.
친환경 포장재 사용을 확대하고 다회용 배송상자, 보냉재 회수 시스템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의 ‘생산’만 친환경일 것이 아니라 유통과 소비 단계까지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경기도 광주에 최근 문을 연 경기 유기농문화 체험센터처럼 교육·체험 공간과 꾸러미 사업을 연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시설은 농식품부와 경기도가 총사업비 230억 원을 투입해 만든 유기농 복합문화 공간으로, 전시와 체험·교육·소비 기능을 갖추고 있다.
임산부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이유식 만들기, 제철 친환경농산물 요리교육, 농가 체험 등을 꾸러미 사업과 연계한다면 단순한 현물 지원을 넘어 친환경 식생활을 확산시키는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
‘16만 명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 이후에도 사 먹는 것
결국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의 성패는 정부 예산으로 얼마만큼의 농산물을 공급했느냐가 아니라 사업이 끝난 뒤 무엇이 남느냐에 달려 있다.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친환경농산물을 접한 소비자가 지원 종료 이후에도 자신의 비용으로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한다면 사업은 새로운 소비자를 만들어낸 셈이다. 반대로 정부 지원이 끝나는 순간 구매도 함께 사라진다면 친환경농산물 시장 확대라는 정책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향후 사업 성과를 ▲소비자 품질 만족도 ▲반품·민원 발생률 ▲공급품목 품절률 ▲시장가격 대비 판매가격 ▲지역 친환경농가 조달 비율 ▲농가 수취가격 ▲지원 종료 이후 친환경농산물 재구매율 등 구체적인 지표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마지막 ‘재구매율’은 이 사업이 단순한 복지사업에 머물렀는지, 친환경농산물의 새로운 소비층을 만들어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임산부에게는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친환경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로와 정당한 소득을, 사회에는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식생활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이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다.
따라서 ‘16만 명 지원’이라는 양적 확대를 넘어 품질과 가격, 농가소득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느냐. 다시 출발한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이 장기적인 친환경 먹거리 정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농업환경뉴스 )




















